발람의 사악한 길(민22:31-40)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세 번이나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발람의 길을 막았다. 모압 왕에게 가는 그의 길이 사악하다 하신다. 이상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의 길을 허락하시고 왜 또 막으려 하셨을까? 왜 나귀를 동원해 그를 살리고 또 모압 왕에게 가라 하셨을까?
사도 베드로가 발람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른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2:15)” 이 사건은 인간의 사악한 의도와 부패한 영적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발람에게 모압 왕에게 갈 것을 허락하셨지만 사실 그것은 허락이 아니었다. 그가 악한 길을 원하며 행하려 하기에, 곧 미친 행동을 하고 있기에 그의 속마음을 들춰내며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이다. 돌이키지 않으면 죽음의 저주를 피할 수 없다. 본문의 나귀는 주인에게 반항했다. 억울함에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귀를 통해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을 죽이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가 원하는 길을 허락하신다. 여전히 그는 돈을 사랑한다. 세상을 향한 육신의 애착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선민이 아니다.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불의의 삯, 곧 세상의 돈과 명성 등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선민을 향한 저주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언약이 있고,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선민들이 스스로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실 것이다. 사실 무당이나 주술사 등이 아무리 저주를 퍼부어도 상관이 없다. 십자가의 주님과 연합한 선민에게 그런 저주는 효력이 없다.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 대속의 권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약한 신자는 영적 장사꾼의 축복이나 저주의 말에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발람처럼 돈과 명성 등 세상의 것을 사랑하며 집착하고 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도 사실은 의미가 없다.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다면 타락한 영적 시장을 기웃거리며 장사꾼들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생활화에 더 힘써야 한다. 여전히 사람들은 스스로 선악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자기 뜻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뜻을, 사랑과 공의의 주권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며 기뻐하시는 주님 안에서 마음이 하늘로 올라오는 자녀들을 영생의 구원으로 이끄실 것이다. 오늘도 새 언약의 주님과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완악한 육의 자아가 죽고 그 부활과 승천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 마음이 이르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에 닿을 수 있기를 소원한다.
한없는 사랑과 지혜와 권능의 주 하나님, 아버지를 등지고 집을 떠난 탕자들이 회개하며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늘의 아버지를 믿습니다. 여전히 육체의 눈과 귀로 세상을 향하며 자기를 고집하는 악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주님께 마음을 드립니다. 그 사랑과 은혜의 길을 소망합니다. 성령으로 이끄소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직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우리 삶의 현장에 그 나라가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소서. 오직 아버지께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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