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해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눅22:63-71)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무죄한 그에게 왜 그렇게까지 모욕을 줄까? 공회가 열리고 심문을 당한다. “네가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말해보라.” 예수가 답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을 것이다. 또 내가 너희에게 물어도 너희는 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 그들은 분노한다. 그들과 예수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른 세계에 속해 있고 소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소통하고 있을까?
겟세마네에서 십자가까지 혹독한 수난의 과정이 이어진다. 왜 그런 고통이 필요할까?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세상에 속한 그들에게 예수는 무용지물이며 미친 자 혹은 귀신들린 자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가치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시다. 죄와 죽음에 갇힌 인생을 구원하러 하늘에서 오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저주받은 세상에 마음이 밀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예수는 그렇게 세상에 던져지셨다. 저주 가운데 떨어져서 고통을 당하신다. 그들의 자리에 서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저주의 땅에서 벗어나 영생의 나라로 옮겨지신다.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을 받아서 당신을 통해 하나님께 이르도록 이끄신다. 그것이 저주에서 벗어나 영생과 진리의 나라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얼마나 큰 죄악을 범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며 그리스도를 죽인다. 우리도 그렇게 세상을 향한 자기 소원을 요구하며 매일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죽기까지 그토록 모욕과 고난을 당하신 것은 세상에서 그 마음이 철저히 떠나야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소통이 불가능한 다른 세계, 어둠의 권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받은 신자들은 거룩한 말씀을 들으며 십자가의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따를 것이다. 오늘도 자녀들의 마음을 십자가를 통해 하늘 아버지의 영광으로 이끄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죄와 죽음의 땅에서 멸망의 길을 가는 자녀들에게 생명의 말씀과 빛으로 이끄시며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미천한 자녀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며 하늘의 평강과 기쁨의 여정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셨으니 온 마음을 다해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깨우치며 따르기 원합니다. 오늘도 거룩한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영생과 진리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과 소망,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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