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절망, 유일한 희망은(행27:27-44)
바울이 로마로 간다. 군인들과 함께 지중해를 건넌다. 그들은 바울의 권고를 무시했다. 폭풍을 만났다. 유라굴로 광풍이다. 항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절망한다. 속수무책으로 표류한다. 살아날 희망이 없다. 어둠의 바다에서 14일을 쓸려 다녔다. 유일한 희망은 바울이었다. 로마로 가는 여정의 이 사건을 사도행전의 마지막에 이처럼 길게 늘어놓는 이유를 생각한다.
우리는 베드로나 요한 등 사도들과 바나바의 근황이 궁금하다. 어떻게 전도의 사명을 감당했는지 알고 싶다. 그러나 누가는 그것에 관심이 없다. 바울에 촛점을 맞춘다. 사도행전을 통해 그가 원한 것은 복음이 전파된 역사적 기록보다 믿음의 본질을 바울의 삶을 통해 드러내려는 것이 아닐까?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바울을 세상 나라를 사는 사람들과 대조하며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를 사는 바울의 삶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육신을 통해 만나는 세상 속에서 각자 나의 나라를 살고 있다. 세상의 상식과 관습을 따르며 또한 내 생각과 느낌을,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산다. 조물주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을 듣는다. 주께서 일으키시는 바람에 밀려다닌다. 사람들은 그의 충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배가 난파되고 표류한다. 속수무책이었다. 절망했다. 유일한 희망은 바울에게 있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살 소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들은 간신히 시실리 남쪽의 작은 섬 몰타에 닿았다. 사실 14일간의 표류는 그들을 로마로 이끈 것이다. 이태리 반도와 아프리카 사이의 바다에서 조종이 불가능한 배가 그 섬에 닿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바람과 바다는 그 배를 그 섬에 붙였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려고 하나님께서 일하셨다, 바울로 말미암아 그들은 절망과 흑암의 바다에서 살았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사는 바울을 통해서 그 주권과 뜻을 드러내신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과 주권을 깨닫는다. 오늘 예수를 믿는 우리도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있음과 좋으심을, 그 영원한 주권과 선하신 뜻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가?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의 바람에 순응하며 인생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며, 그 나라가 생활의 현장에 임하며 하늘에서 세우신 뜻이 이 땅 우리 삶의 모든 여정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바울을 통해 증거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그 나라를 증거하게 하소서. 부족하고 연약한 자녀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여시고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소명의 길을 따르기 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과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으로 육신의 시험을 이기며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올리게 하소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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