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의 소명과 갈등, 순종(삿6:33-40)
마침내 기드온이 전쟁에 나선다. 미디안과 아말렉 등 동맹군이 요단강을 건너와 진을 쳤다. 백성들이 그의 나팔소리를 듣고 모였다. 그러나 전쟁을 앞두고 그는 망설인다. 고민한다. 다시 하나님께 묻는다. 정말 나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신 것이 맞습니까? 그는 또 표적을 요구한다. 그는 믿음이 없는 것일까?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은 믿음일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의 고민과 참 믿음을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알 제단을 허물었다. 여룹바알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인정받았다. 분명히 그는 구별된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고민한다. 이전에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비전과 꿈을 품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소원을 가진 적도 없었다. 약한 므낫세 지파의 보잘 것 없는 내게 왜 하나님은 이런 고통스러운 중책을 맡기시는가? 자신이 완악한 백성들을 이끌고 전쟁에 나서는, 이 힘든 일을 맡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분연히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정치인이 되라 한다면 그는 쉽게 순종할 수 있을까? 이 시대 나라면 그런 말씀을 듣고 잠잠히 순종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부르짖지 않았을까? 오히려 기드온처럼 거듭 표증을 요구하는 것이 참 믿음이 아닌가? 마침내 그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고 담대히 민족의 지도자로서 전쟁에 나선다. 본래 자기 인생 계획에 없던 민족의 구원자가 되어 외적들과 싸우며 헌신하기로 결단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자기 뜻을 꺾고 순종한 것이다. 그처럼 표적을 구해서라도 자기의 생각과 느낌, 의지를 꺾고 순종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내 소원, 내 편한 것을 구하며 고집을 부리는 것이 믿음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주님이 앞장서서 가신 이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길을 과연 나는 따라갈 수 있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만물과 역사를 주관하시며 선한 뜻으로 우리 삶에 간섭하시고 보존하시며 구원하시는 주를 찬양합니다. 이 시대 변함없는 사랑과 공의의 손길로 자녀들과 함께 하시며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기드온과 같이 소심한 자들을 불러 큰 용사로 세우시며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오늘의 무능한 자녀들도 긍휼히 여기시고 한없는 사랑과 능력의 손길로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강건하게 하소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그 영광을 보게 하소서, 그 사랑에 이끌려 은혜의 도구로 쓰임 받으며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사랑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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