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행20:13-24)
유두고 사건 다음 날 바울 일행은 드로아를 떠난다. 누가는 바울의 기이한 행동을 기록한다. 그는 밤새 말씀을 전했다.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행들은 배를 타고 가게 한다. 자신은 배를 타지 않고 홀로 80리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앗소에서 일행과 합류한다. 그는 왜 혼자 먼 길을 걸었을까?
유두고 사건과 함께 은혜를 체험한 밤이었다. 아마 흥분의 도가니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이 상황은 빈 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을 때와 같지 않았을까? 그때 흥분한 군중은 예수를 임금 삼으려 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서둘러 해산시켰다. 제자들도 먼저 배를 타고 떠나라 하셨다. 자신은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탈진한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며 은혜에 접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 바울도 그들의 들뜬 소리보다는 홀로 걸으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지 않았을까? 그는 철저히 주께 의지하는 사명자였다. 은혜와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았다. 그에게도 충전이 필요했기에 홀로 걷지 않았을까? 사실 그는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오순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구제헌금을 전달해야 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먼저 자신이 주의 은혜로 충만해야 한다. 흥분하는 상태도 탈진을 일으킨다. 환호하는 사람들 앞에서 높아지는 것도 위험하다. 홀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명자는 늘 먼저 주님과 동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에베소에도 들르지 않았다. 밀레도에서 사람들을 불러서 말씀을 전한다. 동역자들에게 주의 은혜와 사명자의 헌신을 가르친다. 받은 사명, 즉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생명도 아끼지 않는 믿음과 소망, 사랑의 삶을 본으로 보여준다. 오늘 우리는 유일한 나로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만나고 있는가? 소명의 삶을 위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온 마음을 쏟고 있는가? 여전히 세상과 육신의 것들이 아까운 것은 아닌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타락한 육신에 젖은 우리는 자기중심적 생각과 느낌에 사로잡혀서 은혜의 말씀과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라 하신 것은 죄에 찌든 우리를 위한 사랑의 말씀입니다. 부르신 십자가의 도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를 사랑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며, 바울처럼 한 인격으로서 감당하며 걸어야 할 길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오직 믿음과 소망 가운데 천국 자녀의 길을 정직하게 걸으며 은혜를 찬양하게 하소서. 하늘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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